퇴거할 때 벽지·장판 수리비, 보증금에서 전부 빼도 될까?



퇴거를 앞두고 임대인이 “벽지와 장판을 새로 해야 하니 보증금에서 100만원을 빼겠다”고 한다면 견적금액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그 손상이 임차인의 책임인지, 어디까지 복구해야 하는지, 그 결과 실제 공제할 금액이 얼마인지를 순서대로 나눠봐야 합니다.

원상회복 관련 상담이나 서류를 검토하다 보면 벽지·장판뿐 아니라 곰팡이, 누수, 시설물 파손 등이 함께 문제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입주 당시 사진이나 영상이 없으면 퇴거할 때 발견된 손상이 원래 있던 것인지 임차기간 중 생긴 것인지부터 다투게 됩니다.

이 글은 2026년 8월 25일 기준 시행 법령과 그때까지 확인되는 판례를 기준으로 정리합니다.

원상회복은 어느 상태까지 해야 할까

민법 제654조는 임대차에 민법 제615조의 원상회복 규정을 준용합니다. 따라서 임대차가 종료되어 목적물을 반환할 때 원상회복의무가 문제 됩니다.

그렇다고 집을 준공 당시 또는 모든 시설이 새것이었던 상태로 만들어 돌려줘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법원 2023. 11. 2. 선고 2023다249661 판결은 임대 당시 이미 종전 임차인 등이 설치한 가건물과 공작물이 있었던 토지 임대차 사건에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현재 임차인은 자신이 임차했을 때의 상태로 목적물을 반환하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종전 임차인 등이 설치한 부분까지 현재 임차인이 철거할 의무는 없다고 본 것입니다.

이 판결은 주택 벽지·장판 사건이 아니라 토지와 공작물 철거 사건이므로 그대로 동일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이 임대차계약의 체결 경위와 내용, 임대 당시 목적물 상태, 현재 임차인이 현상을 변경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밝힌 점은 중요합니다.

따라서 퇴거 당시 사진만 볼 것이 아니라 계약서와 특약, 입주 당시 사진·영상, 입주 직후 주고받은 문자, 퇴거 당시 상태를 서로 대조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낡은 것과 임차인이 망가뜨린 것은 다릅니다

벽지가 변색되거나 장판에 생활 흔적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 임차인의 배상책임이 바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임대차는 애초에 목적물을 사용하고 그 대가로 차임을 지급하는 계약이므로 정상적인 사용에 따른 변화와 임차인의 귀책사유로 발생한 훼손은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대로 임차인의 부주의로 시설을 깨뜨렸거나 반려동물 등으로 문·벽면이 심하게 훼손되는 등 통상적인 사용범위를 벗어난 손상이 발생했다면 임차인의 원상회복 또는 손해배상책임이 문제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몇 년 살았느냐만으로 책임을 정할 수는 없습니다. 손상의 형태와 원인, 입주 당시 상태, 임차인의 사용방법, 계약내용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2007. 5. 31. 선고 2005가합100279, 2006가합62053 판결에서도 통상적인 사용으로 발생하는 손모와 원상회복의 범위를 구별하는 판단이 제시된 바 있습니다. 다만 이는 대법원 판결이 아닌 하급심 판결이므로 이를 근거로 “몇 년 이상 살면 도배비는 무조건 임대인 부담”과 같은 일률적인 기준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임차인 책임이 있어도 전체 교체비가 바로 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원상회복 분쟁에서 자주 빠지는 두 번째 단계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임차인에게 책임 있는 장판 훼손이 확인됐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이것은 우선 책임이 있다는 판단입니다. 여기에서 곧바로 집 전체의 새 장판 교체비 전액이 임차인의 채무라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손상된 부분만 보수가 가능한지, 전체 교체가 실제 필요한지, 기존 시설의 상태는 어떠했는지, 견적서에 적힌 공사가 문제 된 손상을 복구하기 위한 것인지 등을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제가 이 문제에서 중요하다고 보는 순서는 ‘책임 발생 → 필요한 복구범위 → 실제 손해액’입니다. 세 단계를 한꺼번에 판단하면 일부 훼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체 교체비가 그대로 보증금 공제액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판단 단계 확인할 내용 주요 자료
1. 책임 손상의 원인 입주·퇴거 자료
2. 복구범위 부분보수·전체교체 손상범위·공사내역
3. 손해액 공제할 실제 채권 견적·비용자료

특히 주택의 벽지나 장판에 관하여 법률이 거주기간별 임차인 부담률을 하나의 일반 산식으로 정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정 사용연수나 비율 하나만으로 모든 원상회복 분쟁을 처리하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계약서에 원상복구 특약이 있다면

특약도 문구 하나만 떼어 볼 것이 아니라 전체 계약내용과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임차인이 특정 시설을 설치하면서 계약 종료 때 해당 시설을 철거하고 벽면까지 일정한 상태로 복구하기로 구체적으로 약정했다면 일반적인 원상회복 조항과는 판단의 출발점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면 계약서에 단순히 “퇴거 시 임차인 비용으로 원상복구한다”는 정도의 문구만 있다면 그 문구만으로 모든 자연적인 노후와 통상적인 사용 흔적까지 임차인이 부담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원상회복 특약을 검토할 때는 특약의 존재, 복구 대상과 범위, 비용 부담자, 입주 당시 상태를 함께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100만원 견적서가 곧 100만원 공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법원 2021. 5. 27. 선고 2020다263635, 263642 판결은 임대인이 임대차보증금에서 연체차임이나 연체관리비 등을 공제하려면 공제한다는 주장과 함께 공제할 채권의 발생 원인을 임대인이 주장·증명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반대로 일단 발생한 채권이 변제 등으로 소멸했다는 점은 임차인이 주장·증명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사건은 상가 임대차의 연체차임과 관리비 등이 쟁점이 된 사건으로, 주택 벽지·장판의 원상회복비를 직접 판단한 사건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 판결을 벽지 수리비의 구체적인 증명책임에 그대로 대입하기보다는 보증금에서 공제할 피담보채무의 발생 근거가 먼저 확인되어야 한다는 법리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임대인이 견적서를 제시했다는 사실과 임차인이 그 견적금액 전부를 부담할 법률상 책임이 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철거하지 않을 시설의 복구비는

대법원 2002. 12. 10. 선고 2002다52657 판결에서는 임대차계약에 임차인의 원상복구의무와 그 비용을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는 약정이 있더라도, 임대인이 원상복구할 의사 없이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을 그대로 이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다시 임대하려는 경우에는 그 원상복구비용을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이 판결 역시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을 그대로 이용해 재임대하려던 사안입니다. 오래된 주택의 벽지·장판을 실제로 교체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손해배상청구가 당연히 배척된다는 의미로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이 판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원상회복비라는 명칭만 볼 것이 아니라 실제 복구 필요성과 임대인이 목적물을 어떻게 이용하려는지도 구체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점입니다.

누수와 곰팡이는 사진보다 원인과 경과가 중요합니다

누수·곰팡이 사건도 실제로 검토해 보면 결과 사진만으로 책임을 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민법 제623조에 따라 임대인은 계약 존속 중 임차인이 목적물을 사용·수익하는 데 필요한 상태를 유지하게 할 의무를 부담합니다.

따라서 건물 구조나 방수, 배관·설비 노후 등이 원인이라면 임대인의 수선·유지의무가 문제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임차인의 사용·관리상 잘못으로 손상이 발생하거나 확대되었다면 그 부분은 별도로 판단해야 합니다.

특히 입주 당시 자료가 없는 사건에서는 퇴거 당시 나타난 곰팡이나 손상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를 가르는 것부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약서와 특약, 입주 당시 사진·영상, 입주 직후 문자, 하자를 처음 발견한 시점, 임대인에게 통지한 내용, 수리 경과, 퇴거 당시 사진과 견적서를 시간 순서대로 함께 대조하는 방법이 유용합니다.

퇴거 전에는 이 순서로 확인해 보세요

  • 임대차계약서와 원상회복 특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합니다.
  • 입주 당시 사진·영상과 퇴거 당시 상태를 같은 위치별로 비교합니다.
  • 손상이 있다면 정상적인 사용에 따른 변화인지 별도의 파손인지 원인을 구별합니다.
  • 임차인 책임이 인정되는 부분은 부분보수가 가능한지 전체교체가 필요한지 확인합니다.
  • 견적서의 각 공사항목이 실제 책임 있는 손상과 대응하는지 확인합니다.
  • 누수·곰팡이는 발견시점과 임대인에게 통지한 내용, 수리 경과까지 함께 정리합니다.

결국 원상회복 분쟁에서 중요한 것은 “벽지가 낡았다”, “수리비가 100만원 나왔다”는 결과만이 아닙니다.

먼저 임차인에게 책임 있는 손상인지 확인하고, 그다음 필요한 복구범위를 정한 뒤, 마지막으로 실제 손해액을 계산해야 합니다. 책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체 교체비가 자동으로 정해지는 것도 아니고, 오래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임차인의 책임이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원상회복 문제에서 한 가지 자료만 보지 않고 계약서, 입주·퇴거 당시 자료, 수리내역과 견적을 함께 확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손해액부터 계산하기 전에 누구에게 어떤 범위의 책임이 있는지를 먼저 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고 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민법」 제615조·제623조·제654조
대법원 2023. 11. 2. 선고 2023다249661 판결
대법원 2021. 5. 27. 선고 2020다263635, 263642 판결
대법원 2002. 12. 10. 선고 2002다52657 판결

이 글은 2026년 8월 25일 기준 공개된 자료와 작성 시점의 법령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법령 개정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작성자: 법무사 장충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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