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대금을 못 받을 것 같으면 공사를 중단해도 될까? 대법원 최신 판결
공사업자가 공사를 계속하면 자재비와 인건비는 계속 들어가는데, 정작 공사대금을 받을 가능성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이 실제로 부도가 날 때까지 공사를 계속해야 할까요?
대법원은 2026년 7월 16일 선고한 판결에서 이 문제에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도급인에게 당장 신용불안이 없더라도 공사를 계속했을 때 공사대금의 상당 부분을 약정대로 받을 것을 합리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공사 계속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단순히 "돈을 못 받을 것 같다"는 주관적인 걱정만으로 공사를 중단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이번 판결의 핵심입니다.
분양이 실패하자 공사를 중단한 사건
대법원 2026. 7. 16. 선고 2026다202468, 2026다202469 판결은 콘도 신축공사에서 발생한 분쟁입니다.
시행사와 수급인은 콘도 공사에 관한 도급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리먼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위기와 국내 부동산 경기 악화로 콘도 분양 실패가 분명해졌고, 공사가 일부 진행된 상태에서 수급인은 공사를 중단했습니다. 시행사도 이러한 공사 중단을 실질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후 수급인은 기성 공사대금 등을 청구했고, 시행사 측에서는 수급인의 공사 중단이 채무불이행에 해당한다는 취지로 다투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수급인이 먼저 공사를 계속해야 하는 계약이라고 하더라도, 앞으로 공사대금을 제대로 받을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아진 상황에서까지 계속 자기 돈을 투입하며 공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상대방이 부도나야만 공사를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법 제536조 제2항은 먼저 이행해야 하는 사람이더라도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경우 자기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흔히 불안의 항변권이라고 합니다.
이번 판결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대법원이 이를 단순히 도급인의 재산상태나 신용상태만으로 판단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수급인이 공사를 계속 진행하더라도 공사대금의 상당 부분을 약정대로 지급받을 것을 합리적으로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면, 도급인에게 별도의 신용불안 사정이 없더라도 계속공사의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도급인이 부도났는가"만을 보는 것은 이번 판결의 의미를 지나치게 좁게 이해하는 것입니다. 계약에서 공사대금을 어떻게 조달하고 지급하도록 정했는지, 그 구조가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상황인지까지 함께 보아야 합니다.
저도 공사대금이 지급되지 않아 공사가 중단된 유형의 사건을 접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미 지급기일이 지난 기성 공사대금이 지급되지 않은 경우에는 미지급이라는 사실이 눈앞에 드러나 있습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보다 한 단계 앞선 문제, 즉 아직 지급기가 도래하지 않은 부분이 있더라도 앞으로 대가를 제대로 지급받을 것을 합리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선이행의무자가 어디까지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지를 다뤘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돈을 못 받을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공사를 멈춰도 될까?
그렇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민법 제536조 제2항이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입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단순히 수급인이 공사대금을 받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는 사실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금융위기와 부동산 경기 악화 속에서 콘도 분양 실패가 분명해졌고, 계약상 예정된 공사대금 지급구조와 실제 사업 진행 상황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막연한 불안만을 이유로 일방적으로 공사를 중단하면 오히려 자신의 채무불이행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공사 중단이 정당한 이행거절인지 여부는 계약 내용과 당시의 객관적인 사정을 토대로 판단해야 합니다.
공사를 중단한다고 상대방의 지급기일까지 앞당겨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판결에서 놓치기 쉬운 또 하나의 부분입니다.
불안의 항변권이 인정된다는 것은 선이행의무자가 일정한 상황에서 자기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부담하는 채무의 원래 지급기일까지 자동으로 변경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도 불안의 항변권 행사가 당초 약정된 변제기를 변경하거나 변제기의 정함이 없는 채무로 성질을 바꾸는 효력까지 갖는 것은 아니라고 명확히 했습니다.
예를 들어 공사대금을 특정 시점이나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지급하기로 약정했다면, 수급인이 정당하게 공사를 중단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날 곧바로 아직 지급기가 오지 않은 모든 공사대금의 지급기가 도래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행거절 의사를 먼저 밝히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지체책임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대법원은 대가적 관계에 있는 채무 사이에서 이행을 거절할 권능이 존재하는 동안에는 당사자가 그 권능을 행사한다는 의사를 별도로 표시하지 않았더라도 이행지체책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법리도 확인했습니다.
이 부분은 "공사를 중단하기 전에 반드시 불안의 항변권을 행사한다고 통지해야만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실제 분쟁에서는 공사 중단 당시 어떤 사정이 있었고 상대방에게 무엇을 요구했는지가 쟁점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법률상 의사표시가 이행지체책임 발생을 막기 위한 절대적 요건이 아니라는 문제와, 향후 분쟁에서 당시 상황을 입증할 자료를 남겨두는 문제는 구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사를 중단하기 전에 무엇을 확인해야 할까?
이번 판결을 실제 계약관계에 적용하려면 먼저 "상대방에게 돈이 없어 보인다"는 판단부터 할 것이 아니라 계약상 대금 지급구조가 앞으로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객관적인 자료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도급계약서에서 공사대금의 지급시기와 지급조건을 확인합니다.
- 이미 지급기가 지난 기성 공사대금이 있다면 지급내역과 미지급액을 구분합니다.
- 사업의 분양대금이나 금융조달 등이 공사대금 지급재원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 구조를 확인합니다.
- 공사 중단 전후에 주고받은 내용증명, 문자, 이메일, 회의자료 등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를 보관합니다.
- 공사 중단 당시와 그 이후의 상황을 섞지 말고, 중단 당시 어떤 객관적 사정이 존재했는지를 시간순으로 정리합니다.
이번 판결의 의미는 "돈을 못 받을 것 같으면 공사를 멈춰도 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상대방에게 당장 신용불안이 없더라도 계약의 대금 지급구조와 객관적인 사업 상황을 종합했을 때 대가를 약정대로 받을 것을 합리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는 점을 대법원이 분명히 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공사도급계약뿐 아니라 서로 대가적인 의무를 부담하는 계약에서는 누가 먼저 이행해야 하는지, 상대방의 이행이 실제로 얼마나 불확실해졌는지, 그리고 그 판단을 뒷받침할 객관적인 자료가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참고 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민법 제536조
대법원 2026. 7. 16. 선고 2026다202468, 2026다202469 판결
대법원 법원도서관, 2026. 7. 23. 판례속보
이 글은 2026년 9월 29일 기준 공개된 자료와 작성 시점의 법령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이며, 개별 사건에 대한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와 법령 개정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작성자: 법무사 장충익